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녹산의 난 (문단 편집) == 영왕 [[이린]]의 난과 진압(756년 ~ 757년) == 안사의 난이 한참 시끄러울 때에 막간극으로, 영왕 이린이 반란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. 영왕 이린은 당현종의 아들로, 어린 나이에 [[어머니]]를 잃고 당현종 곁에서 자랐다. 자치통감에 따르면 항상 그(현종)를 끌어안고 잤다고 한다. 당현종이 촉 땅으로 들어가면서 아들들을 여기저기 보내 절도사로 세워 각지를 통제할때 영왕 이린 또한 강남으로 보내졌다. 근데 이 사람이 안녹산이 한참 기세등등한 것을 보고 또한 풍요로운 [[강동]] 강남의 재화를 획득하자 '천하가 한참 소란스러우니까 '''금릉([[남경]])을 장악하고 있으면 [[동진]]처럼 될 수 있겠다.''''는 야심을 품어버렸다. 그리고 실제로 분리독립을 시도한다. 이 반란은 당, 그리고 안녹산 진영 양측의 주목을 끌어 공격을 받았으나 이린은 오히려 당의 저지를 뚫고 안녹산 진영까지 공격해 안녹산 휘하의 숙장 중 한명인 아사나승경까지 항복시키기도 했다. 이 반란은 1년이 채 안돼서 진압된다. 당은 이린을 진압하기 위해 회남절도사, 회남서도절도사를 설치하고 강동절도사와 함께 이를 진압하게끔 하자 이린은 곧 세력을 잃었으며 결국 강서채방사 황보신에게 사로잡혀 죽는다. 그런데 당숙종은 이린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"황보신은 이미 나의 동생을 산 채로 잡았는데, 어찌 그를 촉으로 보내지 않고 멋대로 죽였는가!" 힐책하면서 황보신을 파직시켜 버렸다. 여담으로, 시선 [[이태백]]이 이때 이린의 편에 섰다가 토벌 이후 귀양을 갔는데, [[곽자의]]와 인연이 있어서 곽자의의 옹호로 인해 용서받았다. [[인생의 승리자|이 때문인지 곽자의는 이태백이 황실시인으로써 일할때의 황실 일원들 제외하면 동시대 인물로는 유일하게 이태백의 찬양을 받은 인물이 되었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